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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29) 아몬드 - 손원평

by 제임스-지식보고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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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2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히 박혀있다. 

 

크리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사람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윤재는 

머릿속의 아몬드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윤재에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그에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의사들이 윤재에게 내린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 알렉시터미아였다. 

 

쉽게 말해 공감능력장애, 사이코패스이다.

 

그런 윤재가 사회에 평범하게 녹아들 수 있도록 엄마와 할머니는

윤재가 감정을 이해하는 대신에 외우게 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 

 

초등학교 4학년, 윤재는 대부분의 상황을 침묵으로 

튀지 말라는 엄마의 소망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화내야 할 때 침묵하면 참을성이 많은 것이고,

웃어야 할 때 침묵하면 진중한 거고, 울어야 할 때 침묵하면 강한 거다. 

 

또한 '고마워'와 '미안해'를 습관처럼 입에 달고 다녔다. 

 

윤재에게 비극이 일어난 것은 윤재의 생일날,

크리스마스이브에 벌어졌다. 

 

윤재의 생일을 맞아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냉면을 먹었고 윤재보다 

일직 일어나 계산하고 나간 엄마와 할머니는 

 

세상을 증오했고

"오늘 누구든지 웃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긴 '소시민'에게 피습당한다.

 

그 결과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번, 슬픔 한번 보이지 않는 윤재에게

따가운 수군거림이 있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엄마의 친구이자 엄마의 헌책방 건물의 건물주이자

이전에는 의사였고 지금은 매일 빵을 굽는 심박사의 도움으로

계속해서 학업과 삶을 이어나간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어떠한 일로 알게 된 또래의 남자 곤이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곤이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어버려 보호소와 소년원을 옮겨 다니며 

약하면 죽는다는 생각에 늘 폭력적이고 포악하게 행동한다. 

 

곤이의 폭력은 윤재에게도 향하고 

윤재를 자세히 알게 된 곤이는 윤재를 짜증 내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움도 감정도 없는 모습을 부러워한다.

 

오래전에 이별하였다가 찾게 된 곤이의 아버지는 

곤이가 얌전히 공부하기를 희망하고 강요하지만

그럴수록 곤이는 더욱 엇나간다.

 

시간이 흐르며 곤이 외에도 '도라'라는 여성 친구와 가까워지게 된다.

 

도라는 계속해서 달리는 육상선수가 되고 싶지만 

부모님의 거센 반대로 꿈이 증발해

꿈을 생각해 본 것 없는 윤재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왜 달리려는 건지 순수하게 처음으로 질문해 준 윤재에게 도라는 호기심을 갖게 되고

그 호기심이 윤재를 이해하고 이어 평범하고 특별한 한 사람으로서의 호감이 된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매일 보러 가지만 어차피 듣지 못한다는 생각에 얼굴만 보고 돌아오던 윤재였지만

처음으로 도라와 같이 간 엄마 병문안에서

듣던 그렇지 못하던 인사하는 도라가 윤재에게도 엄마에게 하루를 나누며

인사하기를 권하면서 윤재는 사고 이후로 처음으로 엄마에게 인사하며 새로운 의미를 느끼게 된다.

 

도라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다면 곤이에게는 도움을 주는 입장이다.

 

가출 후 험악한 길거리 사람들에게 신고식과 폭력을 당하는 곤이를 찾아가 목숨을 걸고

곤이가 원래 있어야 하는 세계로 데려온다. 

 

곤이를 구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윤재는 처음으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살아 돌아온 윤재를 보며 심박사는 윤재에게 

표정이 다양해졌다고 한다.

 

또 전보다 자란 것 같다고 한다.

 

자란다는 것이 변한다는 것인지 묻는 윤재에게 

심박사는 "그렇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이라 답한다.

 

그러며 윤재는 좋은 방향이 어떤 건지 고민하며 깜짝 선물인 회복된 어머니를 만난다. 

 

모두 같은 방식으로, 방향으로 자라날 수는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나만의 방향으로 자라면 된다.

 

사이코패스였던 윤재도 곤이를 통해 감정을,

도라를 통해 궁금해했던 사랑과 설렘을 배워내지 않던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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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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